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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한의학 이야기/쉬운 본초(약초) 이야기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음양오행이 도대체 무엇일까?

감초.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 가서 한의사와 이야기하다 보면 음양오행으로 '당신의 몸은 이러해서 이렇고 저러해서 저렇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가 많다. 어떤 한의사는 그런 얘기는 일절 안 하고 '당신의 tibialis ant. 쪽에 염증이 생겨서 어디가 아프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전자의 방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후자의 방식을 좋아한다.

요새는 음양오행이라고 하면 기겁을 하고 '돌팔이 아냐?' 이런 식의 야유를 보내는 사람이 참 많다. 마치 한의학=음양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음양오행이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음양오행이라는 것이 대체 뭐길래 한의학에 이렇게 음양오행이 자주 등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음양오행은 도구 같은 것이다. 그림 그릴 때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도화지랑 연필, 붓 등을 쓴다. 음양오행은 도화지, 연필, 붓처럼 도구다. 예술=도화지, 연필 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는가? 음양오행은 그냥 도구, 툴일 뿐이지 음양오행=한의학이 될 수는 없다. 금원사대가(금, 원나라 당시 유명했던 의사 4명) 중 하나인 유완소의 '소문현기원병식'에 나온 원문으로 음양오행이 어떻게 쓰인 것인지 한 번 이야기를 풀어나가보려 한다.

 

又如鹽能固物, 令不腐爛者, 鹹寒水化, 制其火熱, 使不過極, 故得久固也. 萬物皆然.


<劉完素, 素問玄機原病式>

소문현기원병식은 거의 1000여년 전에 쓰인 책이니 당연히 모두 한자로 쓰여있다. 저자는 당대에 의학을 쪼금 배우고 열 나면 해열제, 설사하면 지사제, 변비면 변비 푸는 약 이런 식으로 병의 근원을 알지도 못 하고 약을 막 써서 사람 잡는 의사들이 많아 개탄했다. 그래서 유완소가 이 책이라도 보고 대강은 익혀서 진료하라고 쓴 책이다. 짧은 한자 실력이지만 번역해봤다.

또, 짠 것은 능히 물건을 고밀하게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짠 것(소금)으로 하여금 고기가 부패되고 문드러지지 않게 하는 것은 짜고 차가운 물이 작용하여 그 화열을 제압해 그 화열로 하여금 과도해지지 않게 하므로 물건이 오래도록 원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이 모두 그러하다.

<유완소, 소문현기원병식>

1000여년 전 당대 최고의 의사가 생각한 소금으로 식품을 절이면 왜 부패되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다. 지금과 많이 다르다. 당시에는 여름이 되면 식품이 잘 부패되기에 화, 열이 있을 때 식품이 부패된다고 생각했다. 식품이 부패되지 않게 하려고 이것저것 많이 해봤는데 그 중에 소금 뿌리면 부패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소금을 화, 열에 반대되는 차가운 성질, 짠 맛에 배속했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차가운 성질, 짠 맛에 해당하는 물질을 찾아 식품의 부패를 막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저것 하다보니 소금이 부패를 방지하기에 소금을 차가운 성질, 짠 맛에 배속한 것이다.

즉, 음양오행으로 물질을 나눠 연구한 결과를 기초로 뭘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냥 해보고 맞으면 거기에 맞는 상호관계를 음양오행에 배속한 것이다. 이것을 수 천년 간 반복했기에 약재, 병증, 침 치료 등이 견고하게 음양오행 분류법에 맞게 배속되어 마치 음양오행으로 세상 만물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약을 사용할 때 보이는 음양오행은?

백작약을 쓸 때 음양오행을 이용해 변증하면 정확하게 병증을 찾아 약을 쓸 수 있다. 예시를 보여주겠다.

 

肝脾和, 陰血旺, 則前證自瘳矣.

간장과 비장이 조화로우면 음혈이 왕성해서 앞에서 말한 모든 증상이 스스로 낫는다.

예전에 내가 블로그에 백작약에 대해 공부할 때 썼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2020/05/08 - [본초(약초) 이야기/당귀, 천궁, 백작약] - 백작약(白芍藥), 효능, 성미, 귀경 분석, 신농본초경소(神農本草經疏)를 중심으로.

 

백작약(白芍藥), 효능, 성미, 귀경 분석, 신농본초경소(神農本草經疏)를 중심으로.

이번에 다룰 '신농본초경소'라는 책에서 언급된 백작약의 각종 효능과 작용 기전은 전에 다뤘던 탕액본초에서 다룬 백작약과 조금 다르다. 신농본초경소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백작약에 대해 ��

herborigin.tistory.com

 

이 때 언급된 '음혈'을 집중해서 보자. 굳이 왜 혈이라고 안 하고 음양오행에서 말하는 '음'을 따와서 '음혈'이라고 했을까? 이것도 마찬가지다. 혈이 부족한 증상으로는 대표적으로 안색이 창백해지고 어지러운 증상이 있다. 맥은 대체로 세(細)한 경우다 많다. 이 때 이런 저런 약을 써봤는데 그 중 당귀가 참 잘 듣는 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별 생각없이 혈부족증-당귀 이런식으로 엮는다. 후대에 계속 써보니 '혈증-당귀' 이렇게 쓰는 게 귀찮아서 당귀는 보혈약에 넣고 혈부족은 '음허증'으로 분류했다. 그러다보니 혈은 자연히 '음'으로 분류되었다. 그 상황에 맞는 약을 더 찾아보니 계혈등, 숙지황 등이 있었고 이런 약은 다 보음약으로 분류해버렸다. 나중에는 아예 보음, 음허 이런 용어만 남아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2천년이 넘게 하다보니 증상을 치료하는데 이런 음양오행 분류 방식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예 음양오행표만 가지고 세상 만물을 설명하려 하는데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한의학은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애초에 음양오행에 병증과 한약을 배속한 것이 귀납적으로 한 것이지 연역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혈부족증 - 당귀 이런식으로 출발
후대에는 음허 - 보혈약, 보음약(숙지황, 당귀, 계혈등, 토사자 등)으로 굳어짐

 

경계해야할 점.

음양오행으로 무엇을 설명한다고 '돌팔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가 없다. 특히 한의학에서는 음양오행 배속은 말을 짧게 하기 위해 필요한 약어 같은 것이다. 경계해야할 부분은 음양오행을 가지고 있지도 않는 것을 연역적으로 유추하는 것이다. 귀납적으로 연구되어 음양오행 분류법으로 배속된 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것을 연역적으로 생각할 때는 반드시 실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한 뒤에 음양오행에 배속을 하든지 더 좋은 체계가 있다면 그곳에 배속해서 쓰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약물을 쓸 때 꼭 음양오행에 배속된 것만을 가지고 한약을 쓸 필요가 없다. 최근 나오는 실험 방법인 RCT, Meta분석도 영어로 되어 있을 뿐이고 실험 방법이 정교해졌을 뿐이지 기존 한의학이 하던 것과 큰 틀에서는 똑같다. 한의학 한다고 서양의학을 배척할 필요가 없다.

다만 주의할 점이 요새 현대의학에 한의학을 접목해서 연구하는게 많은데 이 때 불충분한 연구로 한약을 막 쓰는 경우다. 예를 들어 '두통에 사물탕이 유효한가?'라는 주제로 RCT 연구를 했다고 치자. '어쩌구 저쩌구~ 실험 표본 모집, 대조군 설정, 실험 진행, 윤리, 통계 분석'해서 사물탕이 유효한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런 연구는 자세히 보면 두통을 혈허증이라고 생각해서 사물탕을 줬다라고 나와 있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사실 '두통에 사물탕이 유효한가?'가 질문이 아니라 '혈허증에 사물탕이 유효한가? (RCT기법을 통한 검증)'이 질문이 된 셈이다. 쓸데없는 연구다. 왜냐면 두통->혈허->사물탕이라는 관념으로 실험했기에 사실상 양진->한진->한치로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는 아예 서양의학적 두통 분류 체계로 두통을 진단해서 사물탕을 줬다고 한 것도 있는데 이 경우도 두통 진단은 서양의학적 체계로 했지만 사물탕을 고른 과정을 보면 또 '변증' 과정을 거쳤다.

나름 본인 스스로 논문을 많이 읽어 다방면에서 박식하다고 생각하며 논문을 근거로 약을 막 주는 사람들이 있다. 증거중심의학을 추구하는 요새 풍토로는 굉장히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논문들이 엄격한 실험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거의 서양의학적 진단명을 가지고 다시 한의학적 진단을 통해 약을 주고 어떤 결과가 나온지 본 것이다. 번거로운 과정이다.

차라리 그냥 한의학적 진단 해버리고 한약을 쓰지 왜 저렇게 진단을 2번씩 하는건지 모르겠다. (윤리적인 것을 제외하고 가정했을 때!! 실제로 이렇게 하면 큰 일난다.)제대로 된 연구라면 천 가지의 한약을 서양의학적 진단에 대응해 투여하고

그 중 효과 있는 것을 추려내 계속 경과를 본다. 이것을 500년 정도 반복하면 의미있는 결과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새로운 음양오행 배속법이다!

 

과학적 방법론은 배척하면 안 된다. 음양오행도 1000여년 전, 2000여년 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전에 과학적 방법론 중 하나였을 뿐이다. 음양오행보다 더 좋은 방법론이라면 얼마든지 채택해 새롭게 연구하고 결과를 축적해나가면 된다. 반대로 음양오행보다 더 좋은 방법론이지만 통계적 데이터가 음양오행보다 덜 쌓였으면 당장은 음양오행적 방법론을 채용하되 더 좋은 방법론이 데이터가 쌓일 때까지 연구를 더 하면 그만이다. 이 둘이 조화를 잘 이뤘으면 하는 마음에서 표지 사진을 모든 약재를 잘 조화시키는 약재인 '감초'로 정했다.